46_Cathedral@tabletopaudio.com
당신은 사제들의 조언을 얻기 위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어두워진 밤하늘,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유난히도 선명하게 메아리쳐오고 있습니다.
절벽가에 부딪치는 시원하고도 청량한 물보라소리는 마치 해변가에 밀려들어오는 하얀 백사장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마당에는 알핀이 장식하고 있던 유리등들이 반짝거리고 있고 그 너머에는 황금빛 초가 밝혀진 성당이 있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린 것 같은 황금빛 들판 너머 활짝 열려진 성당의 문이 보입니다.
안은 촛불의 빛만으로도 충분한지 전기등을 켜지 않아 더욱 고요하게 보입니다.
당신은 유리등이 장식된 마당을 가로질러 성당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The Long Rain+The Bog Standard@tabletopaudio.com
불이 꺼진 성당안, 촛불들만이 밝혀져 한층 경건에 보이는 노을빛 예배당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양측의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어보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문은 잠겨져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알핀과 엔델리온 사제, 메이븐 사제등을 불러보지만 아무도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불이 어두운 문가를 배회하던 당신은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세찬 빗소리에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고개를 돌려 열려있던 현관문을 바라보았습니다.
마른 하늘 아래 천둥소리가 나며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의아해하며 창문가에 다가갔지만 마당에 늘어놓아져 있는 유리등불들은 흔들림없이 아름답게 밝혀져 있습니다.
다시한번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빗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예배당의 촛불을 흔들어 놓습니다.
정신없이 일렁이는 빛무리속, 무거운 경첩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습니다.
얕은 발구름 소리와 함께 또 다시 번개가 번쩍입니다.
창문도, 현관도, 모든 것이 닫혀있는 어두운 성당속에 쉴새없이 파도소리가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번쩍이는 하늘 아래, 나무그늘이 이어지는 언덕길이 보입니다.
촛불이 켜진 마당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그림자가 길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검은 그림자들은 하나 둘 늘어나 어느새 열명남짓한 무리가 되어있습니다.
파도소리가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파도소리가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저 멀리 파도소리를 몰고온 그림자들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꺼림칙함에 당신은 창문에서 물러섰습니다.
성당의 어둠이 당신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예배당의 전등만이라고 켜보려고 하지만 예배당의 불을 켜기 위해서는
동쪽 복도, 메이븐 사제의 방 맞은 편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야만 합니다.
당신은 급한마음에 동쪽 복도의 문 앞으로 달려가 잠겨진 문고리를 돌려봅니다.
찰칵거리는 잠금쇠 소리와 함께 문은 열리지 않고있습니다.
당신의 발걸음, 당신의 숨소리.
당신의 모든것에 반응하는 촛불들이 당신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천장에서, 벽면에서, 의자위에서, 단상앞에서.
마치 예전 성당에 사람들이 모였을때처럼 줄줄이 늘어선 좌석마다 하얀 초가 하나씩 밝혀져 있습니다.
마당 너머에서, 성당의 의자 위에서.
그림자들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춤주춤 단상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당신의 발치에 무언가가 채여 굴러갔습니다.
어둠속에서 주워든 작은 털뭉치가 낯이 익은 물건입니다.
당신은 언젠가 호텔방에서 주웠던 곰인형과 비슷한 물건을 주워들었습니다.
이 장소에 있을리 없는 물건이기에 당신은 다시한번 곰인형을 '탁탁 털어서' 살펴봅니다.
(탁탁 털어보자..)
다시 살펴본 곰인형은 여기저기 삐뚤빼뚤한 바느질탓에 조금 찌그러지고 못생겨보이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애정을 담아 만든 것은 확실한지 인형의 이름표에는 큰아이의 이름이 쓰여져 있습니다.
인형을 주워드는 당신의 귓가에 의자들이 밀려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단상의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던 긴 좌석의 의자들이 모두 양 옆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촛불들은 바닥에 내려놓아져 있고 성당안에는 웅성거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메아리칩니다.
그들은 모두 불안해하고 있고 또 걱정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아련하게 엔델리온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엔델리온 : 혹시 담요 더 필요하신분 없으세요? 지금 막 따끈한 차를 끓였으니까 추우신 분들은 먼저 이야기해주세요.
어르신, 옷은 잘 맞으시나요? 아니에요. 어서 이 담요 받으시고, 따끈한 차라도 드세요.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이니까요.
할아버지요? 어.. 잠시만요. 네, 저기 계시네요. 할아버지. 할머님 오셨어요. 앗, 저는 그만 가볼게요. 네, 가요. 금방 갑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발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기도소리가 들려옵니다.
비가 그치기를, 아무일 없이 지나가기를, 누가 다치거나, 휩쓸려가지 않기를.
조곤조곤, 목소리를 낮춰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속에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 : 좀 괜찮아요? 세상에, 이 차 좀 마셔요. 괜찮아요. 그냥 자스민 차니까. 초기는 지났죠?
어머, 어떻게 알고있냐니. 그야... 음... 아니에요. 너무 경계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마음 편하게 먹고.
안녕 아가야? 아줌마가 네 생일잔치에도 갔었는데, 너는 아줌마 모르지? 하하하, 아이가 참 순하네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 예전부터 마음이 쓰였는데 워낙 그 댁 어머님이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라..
그러고 보니 그 아주머니는 안보이네요? 음, 대피소? 차라리 잘 되었네요. 네. 여기 있어봤자 또 무슨 소란을 피울지..
차라리 그 오두막이라면 어르신들이 많이 있을테니까 조용히라도 있겠죠. 아하, 웃었네요. 괜찮아요. 아무도 못들었어요.
차 다 마셨나요? 좀 더 가지고 올까요? 그래요. 좀 쉬고 있어요. 아이도 많이 지친것 같으니까요.
아가, 곰인형 잃어버릴라. 꼭 쥐고 있으렴.
파도소리, 비 소리.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타박거리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쿵쿵, 바닥이 울려오는 소리. 멀어졌던 발소리와는 다르게 힘차고 강박적인, 짜증스러움이 묻어나는 발소리입니다.
??? : 따지고 보면 이거 다 저녀석들 탓 아니야?
남자의 목소리가 울리고 잠시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공기가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거부, 거절, 부정, 비난, 그건 너무 억지스럽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일렁이는 촛불들 탓에 당신의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 : 하지만 생각해봐. 저녀석들이 촌장의 집에 숨어들어간 탓에 부정이라도 탄 거 아니냐고.
물론 나도 성당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저녀석들은 범죄자잖아?
모두가 극단적인건 아니지만 일단 저녀석들은 아니잖아?
나는 신당의 예언도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단 찝찝한건 찝찝하다고 생각해. 안그래?
술렁이는 바람소리. 의문, 의혹, 부정, 긍정. 쓸데없는 소리에 동조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더 활기를 띄고 이야기합니다.
??? : 다른건 아니고, 난 저런 범죄자 녀석들이 이 예배당에 함께있는건 반대야.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가면?
촛불들 중 일부가 성난듯 흔들립니다 다른 곳이 어디 있냐는 의문이 당신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옵니다.
??? : 뭐야. 사람이 그냥 걱정되어서 그렇게 말 좀 하겠다는데. 네가 뭔데 내 말에 하나하나 평가질이야?
다른곳이 없으면 창고라도 들어가 있던가, 복도에 나가 있던가. 눈치껏 처신하란 말이야.
촛불들 중 일부가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누군가는 그를 비난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거세게 흔들리는 촛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 처럼 요동칩니다.
활기가 느껴집니다. 소란이 일어난 것에 희열을 느끼는 자가 있습니다.
이 분위기, 이 불안감. 그는 이러한 군중들을 휘어잡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발구름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일어섰습니다.
성난 파도소리가 몰려옵니다.
나가라, 나가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소리속 음울한 메아리가 들려옵니다.
엎치락 뒤치락 뒤섞이는 발소리속에 성난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두려움, 절망감, 외면, 회피, 침묵, 울려퍼지는 것은 오직 강한 자의 주장뿐.
싸움이 일어나버렸습니다.
메이븐 사제 : 모두들, 진정해주십시오.
그러나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메이븐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납게 물거품을 일궈내던 파도소리가 한순간이지만 잠잠하게 가라앉았습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는 마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처럼 온화하게 울려퍼집니다.
설교를 하듯 지속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성당의 안을 가득채웠습니다.
단아한 발소리가 이어지고 서로 엉켜있던 발소리들이 조금씩 물러섰습니다.
이제 끝난걸까?
다시 잠잠해진 촛불들의 위로 당신의 그림자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단상의 뒤에 있던 그림자는 머리위에서 내리쬐이는 강한 빛에 이끌려 천천히, 천천히, 예배당의 중앙으로 드리워 집니다.
하지만,
.....하지만?
쿵쿵거리며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당신의 상념을 깨어버렸습니다.
불이 꺼진 마당의 앞, 파도소리를 몰고온 그림자들이 서 있습니다.
쿵, 쿵, 쿵. 그림자들은 무언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두번, 그리고 세번, 다시 두번. 문이 두들겨질때마다 성당안의 촛불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날아든 빗방울들이 유리창에 무색 투명한 얼룩을 남깁니다.
후두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욱 선명해지며 멀리서 한걸음씩 다가오는 천둥소리와 함께 창문너머로 은백색의 눈부신 섬광을 쏟아넣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깥에 서 있는 그림자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동안, 예배당 한 가운데에 큰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쿠당탕,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높은 비명소리가 울려퍼집니다.
동시에, 남자가 소리칩니다.
??? : 이 배은망덕한 녀석..! 네가 감히 사제님을...?
??? : 아니야!! 내가 한게 아니야!! 네녀석이 계속 내 멱살을 잡고 있었잖아! 난 그냥 네 손을 쳐내려고 한건데..!
??? : 잡아! 몰아내! 이녀석은 성당에 머무를 자격이 없어!
다시 뒤엉키는 고함소리와 함께 성당의 문이 열렸습니다.
문을 두들기던 그림자들이 비바람에 흠뻑 젖은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열려진 문을 통해 세찬 비바람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촛불들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같이 일렁이고 종소리는 파도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내보내, 내보내.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
비가 그쳤으면 좋겠어.
오늘이 지나갔으면 좋겠어.
비가 내립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파도소리가 당신의 생각을 모두 밀어내 버리고 있습니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당신은 천천히 성당의 문을 향해 나아갑니다.
쫓아내, 쫓아내버려.
당신은 부당함을 알면서도 이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한번 터져나온 불안감은 이름모를 증오와 폭력의 탈을 쓰고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나가라, 나가버려.
더이상 이런 모습들 보고싶지 않아.
하지만 당신의 발걸음의 현관의 앞에 도착하는 순간, 파도소리와 비소리가 사라지며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정적속에 누군가가 속삭입니다.
??? : 웃어? 지금 네가 웃을 처지야? 부정탄 것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너가 더 꺼림칙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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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립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그림자들을 향해 비난 어린 촛불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렁이는 촛불 속 술렁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래? 그런가? 그렇지 않아. 하지만? 그렇지 않아? 그럴리가. 내보내. 전혀관계없어. 하지만 혹시 정말이면? 무슨소리들이야? 다들 이상해.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 피곤해. 시끄러워. 지겨워. 그런거야? 아니라니까. 파도소리 장난아니다. 그렇다잖아. 누가그래? 나도 몰라. 그냥 들었어. 정말이야? 그렇다는데? 아이가 참 순하네요 그냥 그렇다고 하자. 자면 안돼? 그냥 그러면? 그렇지 않아. 누가 책임질건데? 집에 돌아가고 싶어. 정말 그렇데? 사제님은 괜찮아? 피곤해. 그럴리가 있겠냐. 그렇지 않아. 추워. 뭐가 아니야? 추워. 정말 다들 왜이래? 누가 시작했어? 뭐가 문제지? 담요필요하신분? 쫓아내자. 왜 다들 싸우는거야? 저사람 또 저러네. 맞는말인것 같아. 아니야. 왜 내 말은 다 부정해? 그럴리 없어. 힘들어. 내가 언제. 싸우지들말아요. 그렇지 않아. 다들 이상해. 머리아파. 솔직히 조금 귀찮아. 애초에 예언에서 뭐라고 했었더라?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차 더 마실래요?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많이 아파요? 전혀 관계없어. 돌아가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그렇다고 해. 인정하기 싫은거지? 집에 가고싶어. 언제까지 반복할거야? 당신때문이야. 이게 다 몇명이람.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데? 곰인형 잃어버릴라, 춥진 않소? 왜 모두들 싸우는거야? 너때문이야. 그렇지 않아. 항상 그렇게만 탓하지. 언제까지 그렇게 휘둘리는거야? 너때문이야. 이제 생각하는것도 지겨워. 조금 졸린 것같아. 누가 대신 해결해줬으면 좋겠어. 뭐가문제야? 그냥 하자는대로 하자. 아닌건 아닌거야. 부당해. 당신 탓이야. 비가 많이오네. 집에 창문 닫았던가? 배고프다. 사제님은? 아이가 참. 저기봐. 또 싸운다. 저사람이야? 순하네요. 울지마요. 성가셔. 이게 다 무슨일이야? 누가 좀 도와줘요. 무서워. 그런거야? 책임질 수 있어? 왜 내가 그래야하는데? 나는 그냥 들었던것 뿐인데. 피곤해. 도저히 못들어주겠네. 근데, 우리..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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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비가 내리는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유리등이 꺼진 잿빛의 언덕 너머 낯익은 그림자가 서 있습니다.
대가를.
부당하게 해를 당한 나의 원한을.
그 대가를.
섬을 떠나버린 무책임한 이들 대신, 내가 받아가야 하는 것들은..
다각. 다각.
다각. 다각. 다각.
마른 언덕을 걸어내려가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멀리서 신당의 붉은 불빛이 보이고 있습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당신은, 별이 쏟아져 내린 것 같은 황금빛 들판의 한 가운데에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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